유해진 배우가 왕 역할로 류준열 배우가 맹인으로 나온다는 자체가 흥미로워 더욱 궁금해지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22년 본 영화 중 가장 베스트로 꼽는 스릴러 영화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맹인이 보는 세상
'몸의 어느 한쪽이 불편하면 다른 쪽들이 발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촉각과 청각에 예민하다고들 합니다. 아직 한의학이 아직 높게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 조선에서 맹인 '경수'는 침술사입니다. 의원이 직접 침을 두기보단 침을 잘 두는 침술사를 데리고 다니며 침만 두게 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걸음걸이 소리와 숨소리, 말소리만으로도 환자의 상태를 알고 파악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사람들에겐 그저 앞 못 보는 소경입니다. 고기를 사러가도 택도 없이 적은 양을 주고, 약을 사러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경수 앞에서 잘난 척, 아는 척을 하는 게 당연하고 천대를 하고 오물을 맞고 발로 차이고 맹인인 경수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보지 못한다는 것이 득이 되기도 합니다. '눈은 감고 귀는 닫고 알아도 모른 척 보고 못 본 척' 해야 하는 궁궐에 걸맞은 경수는 침술사 취직하게 됩니다.
경수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주맹증'을 앓고 있었는데 밝을 때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 되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희미하게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소현세자'에게 들키고 거짓으로 궁에 입궁했다는 사실 때문에 큰 죄를 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안 보고 사는게 몸에 좋다고 해서 눈을 감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며 잘 보이지 않는 경수를 위해 청에서 가져온 돋보기를 선물 받습니다.
8년 만의 복귀 당혹스러운 세현세자의 죽음
8년 동안 청나라의 인질로 잡혀갔던 세현세자는 본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인 인조에게 인질의 신분으로 잡혀갔었지만 그곳에서 많은 이방인들을 보고 좁디좁은 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이 다가 아닌 것을 깨닫고 조선을 더욱 강건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학문과 견해를 쌓아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더는 대신과 백성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주변국의 통치에 떠는 두려움을 겪지 않고 왕건을 굳건히 하길 바랐던 세자는 충신의 마음으로 넓혀온견문을 함께 터놓고 얘기하길 원하지만 눈과 귀를 닫은 인조는 함께 견해를 넓히기를 거부하고 청에 나가있는 동안 오랑캐 물이 들었다 생각합니다. 청에 있을 때부터 잔기침이 심하고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세자는 조선에 들어오자 더욱 병세가 악화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궁궐 의원 이형익과 경수는 야심한 시간 병세가 악화된 세자를 찾게 됩니다. 세자의 병증이 시급해 의원에 명에 따라 침술사가 침을 놓지 않고 이형익이 직접 진료를 하는 대신 경수는 세자를 치료하며 무언가를 닦아낸 천을 찬물에 계속해서 씻어줍니다. 그러다 우연히 촛불이 꺼지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이 경수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눈과 코 귀와 입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세현세자의 모습이 눈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너무나 놀라 들숨을 크게 쉬는 순간 이형익은 경수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를 시험하기 위해 눈에 침을 꽂아버리려는 시늉을 하지만 경수는 그 순간을 간신히 넘어갑니다.
세현세자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사투
맹인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받고 따돌림당하고 항상 서러움 밖에 남지 않던 삶 속에 세현세자만은 맹인인 경수와 '주맹증'을 앓고 있는 경수에게도 항상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거짓으로 궁에 들어왔지만 비밀을 지켜주는 것을 넘어 이 시대 조선에선 구하기도 힘든 돋보기까지 얻는 은혜를 입은 경수는 세자가 치료를 가장한 암살을 당하고 있던 당시 도와 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치료가 끝났다며 경수를 돌려보냈을 때 치료 당시 독을 주입했다는 것을 냄새로 알고 경수는 이형익 모르게 해독약을 먹이려 급히 세현세자의 방으로 향하지만 이미 세자는 죽고 난 후였습니다. 허망하기만 하던 그때 암살 당시 쓰였던 자신의 침 하나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형익 또한 급히 세자의 방으로 향하게 되고 본인이 이곳에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창문으로 급히 도망치다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형익은 세자를 죽인 살인범을 그 방에 있던 자로 돌려 거짓말을 하고 경수가 도망칠 당시 흘렸던 피를 발견해 상처 있는 자를 찾게 합니다. 암살범을 찾기 위해 탐문이 시작되지만 갖갖으로 검문을 피한 경수는 세자빈을 찾아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기록의 사실
이형익은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1645년 소현세자의 주치의를 역임하였으나 세자가 죽자 사헌부, 사간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그의 죄를 논하고자 장계가 올라왔으나 임금은 이를 따르지 않았을 정도로 인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1649년 인조가 붕어하자 그 책임을 물어 함경북도 경원으로 유배 갔으나 2년 후 왕대비 장렬왕후 조 씨의 병후가 위독하여 특명으로 석방되어 다시 부름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인조 23년 6월 27일의 기록엔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돼 병을 얻었고 병이 난지 수일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옴으로 검은 멱목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라고 쓰여있다.
실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이라는 모질고 굴욕적인 인질 생활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자신의 왕권을 뺏길까 겁이난 인조는 왕위를 지키기 위해 세자를 적대시하고 칭찬의 말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세자는 학질의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고 장례가 끝난지 5개월만에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책봉한다. 그리고 세자빈은 인조의 전복구이에 독을 넣었다는 이유로 반역의 죄를 물어 하옥시키고 고문을 당했고 머지않아 폐위 당한뒤 바로 사형에 처해지지만 사실 독살을 꾸몄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저 거슬리는 세자빈을 살해하고 싶었던것이다.
소현세자의 아들들 또한 유배로가 사망했다. 이 모든일은 긴 인질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소현세자가 2달만에 죽고 3년만에 겪은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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